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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전시&공연

전시 - 아스거 욘 : 대안적 언어

MMCA 아스거 욘 展

사실 불온한 데이터보다 아스거 욘을 먼저 봤다. 아스거 욘을 보고 예술이 독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는데, 불온한 데이터를 보며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 뒤 독서모임에 나가서 여러 의견들을 교환하며 생각이 좀 정리된 느낌. 전시의 배경 및 내가 전시를 보던 당시 느꼈던 생각과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거리들을 기록해둔다.

 

예술 경향의 변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이성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더 자연적인 것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예술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회화 도구로 쓰인 적이 없던 재료들을 사용하고 어린아이와 노동자, 정신병자 등 예술을 배운 적이 없는 자들의 활동을 더 순수하다 여기며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마찬가지로 서양보다 더 순수하다 믿은 아시아 쪽이 각광받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가 더 순수하다는 건 누구의 잣대로 내려진 판단인가? 철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 아닌가.

 

협동

다양한 사람과 협동을 통해 완성된 작품들. 아스거 욘은 끊임없이 다른 작가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뜻이 맞지 않아 프로젝트가 와해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동료들을 찾아냈다.

나 역시 사람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립된 인간의 생각은 고여 흐르지 못하고, 세상은 확장되지 못한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

어느 주의보다 앞서나가 삶에 예술을 개입시키자는 아방가르드는 아스거 욘이 추구했던 예술에 걸맞은 사상이다. 예술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행사할 정도로 강력하나, 그 힘을 노리는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아방가르드를 견지하기가 힘들 수밖에.

 

예술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에 정치사회적 의미가 담기지 않을 수 있을까? 작품에는 예술가가 살아온 시대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 독립적이라 할 수 없지 않나. 잭슨 폴락을 자유를 상징하는 예술가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데 정치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을 수 있나? 냉전시대의 사상 전쟁과 연관이 없다 볼 수 있을까?

냉전 시대 예술은 선전으로 이용됐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사상 대결의 도구로 쓰이고, 블랙리스트로 예술가들을 관리하던 시대. 블랙리스트는 예술가들의 생각을 제한시키고, 자가 검열을 강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봉준호 감독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게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 

전시와 별개로 블랙리스트가 최근까지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세기가 바뀌고, 사상이 진보했다 믿었는데 과거로 돌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가. 발 한번 삐끗하면 다시 돌아가기 십상인데.

 

예술은 자본주의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작금의 트렌드인 높은 유리 건축물도 부를 뽐내기 위한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건축, 문학, 회화 모두 자본주의에서 빗겨 설 수 없다. 수많은 공모전과 상금, 경매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은 예술을 자본주의에 종속시킨다.

저명한 심사위원이 참여한 시상은 작가들에게 성공을 위한 날개이자 생계를 지원해주기 위함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다시, 예술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

 

교육

아스거 욘이 68혁명의 포스터에 틀린 철자를 적고, 회화에 절대적인 가치로 둔 것 모두 낮은 이를 향한 정신이라 한다. 그는 교육이 싫다 했다. 교육받지 못한 자들을 향한 예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긴 하지만, 배움이 없이 인간이 사람답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들을 위한 예술과 더불어 교육이 필요하다. 그저 밥만 먹고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기존의 관념과 규범에 도전하고, 사회 변화의 토대를 제안해하려 했던 욘 역시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활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예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개입하기 위해서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야할 것 아닌가.

 

공감

뜬금없긴 하지만, 공감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등을 중시했던 욘도 오리엔탈리즘이 차별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그런 사고를 하지 않았을 테지. 그리고 기실 그가 주장했던 내용들도 자기보다 약한 타인에게 공감함으로써 가능한 것들 아닌가?

 

무엇보다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전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서로 공감한다면, 서로를 존중해 줄 수 있다. 공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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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작가가 예술을 대하는 방식. 최근에 본 아스거 욘과 불온한 데이터 모두 덴마크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는데, 그들은 예술을 활용해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계급격차가 적다고 여겨지는 북유럽에서 오히려 그런 쪽의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이 더 많고,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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