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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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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네가 날 미워할까봐 무서웠어." "내가 무서웠어?" "넌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상처를 주고 받는 사람들에 대한 단상. 관계를 맺고 사는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만한 상황과 생각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진정 내게 무해한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
백의 그림자. 황정은. 2015년, 아직 서울로 올라오기 전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세운상가가 어딘지도, 어떤 건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좀 특이한 연애소설이네 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최근 독서모임에 이 책이 선정되어 다시 읽었다. 정말 많은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걸까? 혹은 세운상가를 알게 되어 그런걸까? 사실 내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다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고, 읽었어도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말 끝이 둥근 사람들 백의 그림자의 등장인물들은 '그래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이와 같이 흐르는 대화를 많이 한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는다.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생각이 달라도 다른 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은교와 무재가 ..
디디의 우산. 황정은. 단편소설집 모음. 황정은 작가는 약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날카롭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는데, 책을 덮고난 후 곱씹을수록 먹먹해진다. 개인적으로 그가 책 속에 현재 사회의 모습을 녹여내는 방식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삶에 사회가 어떻게 간섭하는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부담스럽지 않게 묘사한다. 사실 그 사회의 모습이 보기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가 몰라도 되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서. 디디의 우산 정말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의 세상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죽음은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여행의이유. 김영하. 독서모임에 선정돼서 읽은 책. 평소에도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기에 자발적으로는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사실 김영하 작가 책도 많이 안 읽어봐서... 살인자의 기억법과 오직 두 사람을 읽었는데 내 취향이 아니라 느껴서 그 뒤로는 김영하 작가 책을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방송에 나와 말하는 김영하 작가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생각도 못 한 지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말들에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내가 어렴풋하게 느꼈던 감정을 잘 정제된 말들로 풀어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고. 작가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 그런가, 공감 가지 않는 일화도 있었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두 작가 모두 직업이 특이하다보니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라 그냥 그런가 보..
경애의 마음 경애의 마음 김금희 저 문학은 일상에 무뎌졌던 감정을 섬세하게 일깨우고,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은 어떤 것인가 가만가만 결을 헤아리게 만든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거듭 되짚어봤다. 경애와 상수는 서로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상실의 경험을 끌어안은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면이 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책을 덮으며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은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잖아요. 그걸 열겠다고 과거로 돌아가서 뭘 바꿀 수는 없고, 현재의 조건을 변화시켜야 하잖아요. 그래서 두 사람이 반도미싱에서 함께 가는 과정을 그리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어요. ... 경애..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한강 저 공유되었어야 할 아픔의 망각에 대하여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기억에서 밀어내고 지워버리는 건 그렇게나 쉽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광주는 현재진행형이다. 불과 4년 전 4월에도 우리는 광주를 봤다. 어느 곳이나 광주가 있고, 또다시 살해당하고 있다. 그 슬픔에 대해 지겹다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애써 수긍하려 해봤다. 충격에서 일찍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치는 거라고, 너무 힘들어 덮어버리는 거라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하지만 억지로 덮은 상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