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

(10)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네가 날 미워할까봐 무서웠어." "내가 무서웠어?" "넌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상처를 주고 받는 사람들에 대한 단상. 관계를 맺고 사는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만한 상황과 생각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진정 내게 무해한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
백의 그림자. 황정은. 2015년, 아직 서울로 올라오기 전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세운상가가 어딘지도, 어떤 건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좀 특이한 연애소설이네 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최근 독서모임에 이 책이 선정되어 다시 읽었다. 정말 많은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걸까? 혹은 세운상가를 알게 되어 그런걸까? 사실 내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다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고, 읽었어도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말 끝이 둥근 사람들 백의 그림자의 등장인물들은 '그래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이와 같이 흐르는 대화를 많이 한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는다.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생각이 달라도 다른 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은교와 무재가 ..
디디의 우산. 황정은. 단편소설집 모음. 황정은 작가는 약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날카롭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는데, 책을 덮고난 후 곱씹을수록 먹먹해진다. 개인적으로 그가 책 속에 현재 사회의 모습을 녹여내는 방식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삶에 사회가 어떻게 간섭하는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부담스럽지 않게 묘사한다. 사실 그 사회의 모습이 보기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가 몰라도 되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서. 디디의 우산 정말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의 세상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죽음은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SIBF - 한강 작가 강연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한강 작가가 주제 강연을 맡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꼭 가야겠노라 다짐 했었다. 신청 날을 달력에 적어두고, 알람을 맞춰두고, 티켓 오픈시간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자니 소녀팬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은 한강 작가가 한 말을 받아 적은 걸 토대로 내 생각을 덧붙인 감상이다.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정말 내가 생각한 모습이라 신기했다. 말투, 어휘, 생각 모두. 한강 작가는 그가 쓰는 글과 닮았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는 말에 깊이 동감 했다. 무언가 확실할 땐 기도를 하지 않는다 기도는 불확실성을 견뎌내기 위한 자기 위안이다. 100년 뒤에도 존재할 숲 그들은 어떻게 100년 뒤를 그리 쉽게 보장하는걸까. 사실 생각해보면 100..
전시 - 데이비드 호크니 展 화풍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더 큰 첨벙', '세레나데'와 '호텔 우물의 경관'까지. 초기에 추상주의를 지양했다 하는데 결국 자신이 보는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추상주의로 빠져드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본인이 정했던 한계를 지우고, 세상을 확장한다. 80이 넘은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괜히 거장이 된 게 아니겠지. 세상을 바라보는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끊임 없이 고민했으리라 느꼈다. 물보라를 위해 2주를 공들이고, 그 순간의 빛이 빚어내는 색감 표현을 위해 수많은 날을 고민하고. 사진은 충분히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작가의 말이 어렴풋이 와닿았다. 직접 경험한, 사진이 잡아내지 못한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겠지. 전시와 별개로 도슨트는 실망스러웠다. 평소 도슨트는 ..
여행의이유. 김영하. 독서모임에 선정돼서 읽은 책. 평소에도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기에 자발적으로는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사실 김영하 작가 책도 많이 안 읽어봐서... 살인자의 기억법과 오직 두 사람을 읽었는데 내 취향이 아니라 느껴서 그 뒤로는 김영하 작가 책을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방송에 나와 말하는 김영하 작가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생각도 못 한 지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말들에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내가 어렴풋하게 느꼈던 감정을 잘 정제된 말들로 풀어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고. 작가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 그런가, 공감 가지 않는 일화도 있었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두 작가 모두 직업이 특이하다보니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라 그냥 그런가 보..
전시 - 아스거 욘 : 대안적 언어 MMCA 아스거 욘 展 사실 불온한 데이터보다 아스거 욘을 먼저 봤다. 아스거 욘을 보고 예술이 독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는데, 불온한 데이터를 보며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 뒤 독서모임에 나가서 여러 의견들을 교환하며 생각이 좀 정리된 느낌. 전시의 배경 및 내가 전시를 보던 당시 느꼈던 생각과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거리들을 기록해둔다. 예술 경향의 변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이성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더 자연적인 것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예술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회화 도구로 쓰인 적이 없던 재료들을 사용하고 어린아이와 노동자, 정신병자 등 예술을 배운 적이 없는 자들의 활동을 더 순수하다 여기며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마찬가지로 서양보다 더 순수하다 믿은 아시아 ..
전시 - 불온한 데이터 MMCA 불온한 데이터 展 . 데이터가 실체 하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에 대한 설명을 OPP 필름에 달아 부유시켰다고 한다. 무엇이든 의도를 알게 되면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전시를 독서모임에 추천했더니 언어에 따른 데이터 권력 집중 문제도 다루고 있냐 물어보는 분이 있었다. 전시를 감상할 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굉장히 공감 가는 내용이다. IT 계열을 공부하고 있자니 더 와 닿는다. 양질의 정보는 영어권, 혹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권에 집약되어있다. . 데이터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데이터가 끝없이 기록되고 재생산되는데, 막상 자기 자신은 어떤 데이터가 기록되고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다. 수집된 데이터들은 권력이다. 덴마크의 작가들은 사회성을 띈 예술을 많이 한다 했다..